
저 같은 경우 아버지가 췌장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우리 가족의 식습관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매일 먹던 김밥도, 주말의 치킨도, 간편하게 꺼내 먹던 스팸도 그저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췌장암입니다"라는 의사의 한마디는 우리 가족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아버지는 평소 소화가 잘 안 된다고만 하셨는데, 정밀검사 결과는 예상과 너무 달랐습니다. 그 이후 저는 췌장암이 왜 한국인에게 특히 치명적인지,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먹는 음식들이 어떻게 췌장을 망가뜨리는 절실하게 배워야 했습니다.
한국인의 작은 췌장이 감당할 수 없는 것들
췌장암이 한국인에게 더 무서운 이유는 우리의 췌장 크기가 서양인보다 약 25% 정도 작기 때문입니다. 췌장(pancreas)은 위 뒤쪽에 위치한 15cm 정도의 작은 장기로, 소화효소를 분비하고 인슐린을 생산하여 혈당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출처: 대한췌담도학회). 여기서 인슐린이란 혈액 속 포도당을 세포로 보내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호르몬을 의미합니다.
제가 직접 아버지의 투병 과정을 겪으며 느낀 건, 작은 췌장이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지방을 분해하고, 단백질을 소화하고, 혈당까지 조절해야 하는데, 여기에 고지방·고당분 음식이 계속 들어오면 췌장은 말 그대로 과부하 상태가 됩니다. 마치 작은 엔진에 무리한 짐을 계속 싣는 것과 같습니다.
췌장염이 반복되면 만성 췌장염으로 진행되고, 이는 결국 췌장암 발생 위험을 높입니다. 실제로 만성 췌장염 환자는 일반인보다 췌장암 발생률이 약 13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국가암정보센터). 저는 아버지를 통해 이 수치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액상과당의 진실
아버지는 피곤할 때마다 박카스나 비타 500 같은 피로회복제를 드셨습니다. 저 역시 콜라나 사이다를 물처럼 마셨고요. 그런데 이런 음료들에는 HFCS(High Fructose Corn Syrup), 즉 고과당 옥수수 시럽이라는 액상과당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성분은 단순히 단맛을 내는 것을 넘어서 암세포가 성장하는 데 직접적인 연료로 사용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액상과당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체내에서 대사 되는 방식 때문입니다. 일반 포도당은 전신 세포에서 사용되지만, 과당은 간에서만 대사 되어 중성지방으로 빠르게 전환됩니다. 쉽게 말해 과당을 많이 섭취하면 지방간, 비만, 당뇨로 이어지고, 결국 췌장 기능까지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겁니다.
제가 실제로 확인해 본 결과, 콜라 한 캔(355ml)에는 약 39g의 당이 들어있는데, 이 중 대부분이 액상과당입니다. 하루 권장 당 섭취량이 50g인 점을 고려하면 음료 하나로 거의 하루치를 채우는 셈입니다. 췌장은 이런 당 폭탄이 들어올 때마다 인슐린을 과다 분비해야 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췌장 세포가 지쳐 제 기능을 잃게 됩니다.
가공육과 튀김, 우리 식탁의 일급 발암물질
WHO(세계보건기구)는 햄, 소시지, 베이컨 같은 가공육을 1급 발암물질로 분류했습니다. 이는 담배, 석면과 같은 등급입니다. 매일 50g의 가공육을 섭취하면 췌장암 위험이 29%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50g이면 스팸 두 조각 정도밖에 안 됩니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김밥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김밥 한 줄에는 흰쌀밥, 단무지, 햄, 맛살 같은 가공식품이 들어갑니다. 제가 혈당측정기로 직접 테스트해 봤을 때 김밥 한 줄을 먹고 혈당이 180mg/dL까지 치솟는 걸 확인했습니다. 정상 혈당이 100mg/dL 이하인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수치입니다. 이런 급격한 혈당 상승은 췌장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줍니다.
튀김류도 마찬가지입니다. 치킨, 돈가스, 감자튀김은 우리 일상에 너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지만, 췌장 입장에서는 재앙입니다. 튀김에 들어있는 트랜스지방산(trans fatty acid)은 췌장 세포막을 손상시키고 염증을 유발합니다. 여기서 트랜스지방산이란 액체 기름을 고체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인공 지방을 말하는데, 이는 체내에서 분해가 거의 안 되어 혈관과 장기에 쌓입니다.
주말마다 즐기던 치킨과 맥주 한 잔이 췌장에는 24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셈이었습니다. 지방을 소화하려면 췌장에서 리파아제라는 소화효소를 대량으로 분비해야 하는데, 여기에 알코올까지 더해지면 췌장염 위험이 급격히 올라갑니다.
건강식품 아보카도도 예외는 아니다
이 부분은 저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다이어트할 때 샐러드에 아보카도를 넣어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보카도는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심혈관 건강에는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미 췌장 기능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보카도 한 개에는 약 15g의 지방이 들어있습니다. 바나나가 거의 0g, 사과가 0.2g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양입니다. 지방의 종류가 좋든 나쁘든, 소화하려면 췌장에서 소화효소를 대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게다가 샐러드를 먹을 때 올리브유를 뿌리고, 발사믹 소스를 더하고, 닭가슴살까지 올리면 췌장 입장에서는 삼겹살 정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좋은 지방이라도 총량이 중요하다는 걸 저는 뒤늦게 배웠습니다. 아버지가 항암치료를 받으며 영양사와 상담했을 때도, 췌장 기능이 약한 환자에게는 아보카도보다는 소량의 견과류나 생선을 권장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방 함량은 비슷하지만 소화 부담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가족은 지금 아보카도를 완전히 끊은 건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그것도 반 개 정도만 먹습니다. 건강식품이라는 이유로 과신하지 말고, 내 몸 상태에 맞춰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아버지의 췌장암 투병을 지켜보며 제가 깨달은 건, 우리가 당연하게 먹던 음식들이 얼마나 췌장에 부담을 주는지였습니다. 액상과당 음료를 물로 바꾸고, 가공육 대신 담백한 수육이나 생선을 선택하고, 튀김 대신 찜이나 구이를 먹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췌장은 훨씬 숨통이 트입니다. 무엇보다 1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고 췌장 수치를 확인하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췌장암은 증상이 거의 없어 발견이 늦지만, 조기에 발견하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저희 가족처럼요.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습니다.